슈퍼비랑

 

 

사실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단순하게 제목이 예뻐서 집어든 책이었다. 이 책을 겨우 여섯쪽 읽어내려 갔을때 나는 포르투갈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로 스페인, 포르투갈에 다녀왔다. 여행내내 리스본행 야간열차에서 받았던 그 특유의 분위기와 감성들이 톡톡, 하고 살아났다.

 

주인공 그레고리우스는 고전문헌학에 평생을 바쳐 연구했고, 젊은 나이와 단기간에 명성을 얻은 누구에게나 존경받는 안정적인 삶을 살고있다. 모두 그를 문두스(Mundus. 세계, 우주, 하늘 등의 뜻을 지닌 라틴어)라고 불렀다. 그의 인생에서 실수를 했던적은 단 한번, 그리스어 수업 시간때였다. 그 실수는 입소문으로 돌고 돌아 전교생이, 전교직원이 믿을 수 없는 일이라며 며칠동안 뉴스 거리가 됐을 정도였다.

그는 나이불문, 성별을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신뢰를 받고 성실함을 인정받는 남자였다. 그런 그에게 여태까지의 삶에서는 전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그날은 다른 여느때와 같이 평범한 일상에서 비롯 되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어느 출근길, 그는 어제와 같은 시각에 키르헨펠트 다리로 들어섰다. 그는 다리에 서있는 어떤 여자를 보았다. 여자는 다리위 허공으로 들고있던 종이를 구겨 던져 버렸다. 그녀의 창백한 얼굴에 분노가 일었다. 그녀가 난간으로 손을 뻗치던 순간, 그는 전혀 그답지 않게 욕설을 내뱉었고 그의 손에 들고 있던 책을이 젖은 바닥에 쏟아졌다. 그녀는 그의 이마에 숫자를 다급히 적었다. 그녀에게 안정을 취하게 해주고 싶던 그는 그녀를 학교로 데려가 잠시 쉬게 해주었다. 그녀는 그가 수업을 하는 동안에 사라져 버렸다. 그는 그날,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게 된다.

그녀가 말했던 "포르투게스(Português)" 한마디로 그의 귀에 멜로디가 들렸다. 그리고 그는 학교에 그간 감사했노라 편지 한통을 남겨두고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몸을 싣는다.

그가 떠나오기전, 낡은 책방 주인으로부터 건네받은 '아마데우 드 프라두' 라는 포르투갈 의사의 책을 읽으며 그의 흔적을 쫓는다.

 

그가 살아온 안정적이고 대단한 삶을 단숨에 접고 앞으로 내가 바라던, 그리던 삶의 새로운 방향을 잡고 낯선 곳으로 한발을 내딛으며 겪게되는 일들이 사실 누군가는 허망된 꿈이고 비현실적인 꿈에 불과하다고 단정 지을수 있겠지만, 모든걸 버리고 아무것도 지니지 않은채 새로운 시작을 한다는건 더 잃을것에 대한 두려움도 감당하고 한번쯤은 나의 인생에서 내가 주인공이 되어봐도 된다는 메세지를 주는것 같다. 남에게 보여지는것과 나의 사이에서 인생의 본질은 어떤것으로 결정 되는가 하는 질문도 생긴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몇번이나 같은 문장을 읽고 또 읽으면서 되뇌이고 이해 했어야 했다. 시간이 오래 걸렸고 몇페이지를 다시 되돌아가 읽기도 했다.

 

"그가 지난 세월 내내 동료들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던 이 익숙함은 착각에 가득한 습관이요, 틈이 생긴 무지임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들이 자기에 대해 뭐라고 생각하는지 아는 것이 중요한, 정말 중요한 일인가? 이 문제에 대답할 수 없는 이유가 잠을 못 자서 머리가 복잡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늘 존재했지만, 사회적인 의식 뒤에 숨어 있어 깨닫지 못했던 낯설음을 지금 막 깨닫고 있는 중인가?" P69

 

 

영화로도 나와 있긴 했지만 이렇게 언어가 좋고 내가, 나만이 상상할 수 있는 분위기를 깨트리고 싶지 않아서 영화는 보지 않았다. 대강 리뷰 정도만 살펴 보았는데 제일 기억에 남는게 "나이든 아저씨가 어린여자 잘못만나 모든걸 잃게됨" 이 줄거리라고 했던 리뷰다. 그래서 더더욱 영화는 보고싶지 않았다.

책도 마찬가지로 실망했다는 리뷰가 많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처음 반을 읽고 여행을 다녀와서 나머지 반을 읽었을때 여운이 많이 남았다. 그리고 이 책도 여러해가 바뀌었을때, 다시 한번 읽어야겠다.